테라의 개발사인 테라폼랩스(TFL)의 권도형 대표가 새로운 체인인 테라 2.0을 만들겠다는 제안을 내놓은 데 대해 테라 네트워크의 주요 검증인들이 잇달아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검증인, 그러니까 밸리데이터들은 그동안 테라 네트워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는데요. 새로운 체인이 만들어져야 이들이 보유한 루나 등 가상자산에 대한 일부 보상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권 대표의 제안을 반대하는 것은 루나 투자자들의 피해 복원과 테라 커뮤니티의 보호 때문입니다. 이 밸리데이터들은 소액 투자자들에 대한 피해 구제와 추락한 사회적 신용과 커뮤니티의 위상을 복원하기 위한 계획이 우선이라고 강조합니다.
테라의 상위 밸리데이터인 DSRV는 권 대표의 테라 복원 계획에 공개적으로 반대, 그것도 거부권이 포함된 가장 높은 수준의 반대를 표명했습니다. 밸리데이터들은 보통 많은 투자자들의 자산을 위임받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결부된 이같은 계획에 반대를 표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DSRV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고 끝에 반대를 표명했습니다. DSRV의 김지윤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커뮤니티와 소액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는 것이 최우선이며 이 때문에 해당 투표에 가장 먼저 반대표를 행사했다고 밝혔습니다. DSRV에 이어 올노드닷컴, 솔리드스테이크, 스테이크5 랩스 등도 가장 강력한 반대표를 행사했습니다.
사실 이번 사안은 외부에서 볼 때는 판단이 명확하지만 테라 생태계나 가상자산 업계 내부에서 볼 때는 생각보다 그리 명쾌하게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김 대표의 표현을 빌자면 "대부분의 경우 사기꾼을 잡아다 놓아도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복구가 우선이기 때문에 처벌 대신 합의를 해주기" 때문입니다. 책임을 묻고 싶지만 어쨌든 체인이 재건이 되고 새로운 토큰이 발행돼야 피해를 조금이라도 보상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제외한 다른 투자자, 밸리데이터들이 찬성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신용과 커뮤니티의 평판, 그리고 소액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 밸리데이터들이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을 지지합니다. 아무리 금융 시장이라고 해도 자산, 또는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판단이 테라 사태의 수습에 올바른 방향타로 작용하기를 희망합니다.
◼︎ 스테이블 코인 옥석 가리기 시작됐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스테이블 코인 발행 열풍이 테라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요즘, 스테이블 코인을 둘러싼 옥석 가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격이 유지되기만 하면 거래시 수수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서 디파이 프로토콜들이 앞다퉈 발행했는데요. 대신 가격이 고정 지점에서 이탈할 시 이번 테라 사태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개념보다 견고함과 유연함의 상호 교환 관계에 가깝습니다. 바위는 휘지 않지만 그만큼 단단한 반면 나무는 바위보다 약하지만 강한 압력에는 오히려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견고할 줄만 알았던 스테이블 코인이 알고보니 바위가 아닌 진흙뭉텅이도 있더라는 게 드러난 지금, 어느 것이 진흙인지 두드려보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매일경제에 따르면 업비트에서 거래중인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프로젝트 8개 중 루나의 폭락을 불렀던 위험신호를 나타내는 코인이 절반인 4개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여기에는 업비트 거래 상위권에 위치한 웨이브즈가 꼽히고 니어, 트론 등도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관측됩니다.
테라가 발행한 UST의 폭락 이후 시장 점유율 1위인 USDT의 가격도 한 때 출렁이는 등 스테이블 코인 전반에 불신이 퍼져 있는데요. 이 중 특히 특정 프로젝트가 발행한 스테이블 코인은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전 뉴스레터에서도 경고해드렸지만 현재는 스테이블 코인보다 원화와 같은 현실 화폐로 자산을 보관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더불어 가상자산의 사회적 신용이 회복되는 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가상자산 업계 '자율 규제' 목소리
테라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을 둘러싼 각국의 규제가 강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업계 자율 규제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해킹과 사기 등 각종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율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매번 제기됐는데요.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스테이블 코인부터 가상자산 프로젝트, 투자사, 거래소, 그리고 검증인과 커뮤니티까지 가상자산 업계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결부된 사건이다 보니 자율 규제에 대한 필요성도 이전보다 훨씬 더 크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자율 규제 중 가장 중요하게 지적되고 있는 것은 바로 가상자산 거래 시장을 둘러싼 이해관계 충돌 방지와 정보 비대칭 해소입니다. 가상자산 거래 시장은 업비트, 빗썸과 같은 중앙화된 거래소와 유니스왑 등과 같은 탈중앙화 거래소로 나눌 수 있는데요. 특히 탈중앙화 거래소를 두고 발행 주체가 유통까지 병행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가격 조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관계 충돌 방지를 위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중앙화된 거래소도 소액 투자자들과 기관 투자자, 토큰 발행사간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제 자율 규제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테라 사태로 각국 정부들이 규제의 필요성을 일제히 소리높여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찌감치 스테이블 코인의 규제 필요성을 주장해온 미국 금융 당국은 가시적인 규제안을 조만간 내놓을 것으로 관측되구요, 영국 등 유럽에서도 각종 규칙을 제정할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이 오는 24일 긴급 간담회를 개최하고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 등을 점검할 방침입니다. 규제의 서릿발이 내리기 전 자율적으로 구멍난 곳을 메우는 업계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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