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파이 업계 전반으로 번진 신용 붕괴의 시작은 지난달 8일부터 시작된 UST 디페깅이었습니다. UST의 가격이 1달러 이하로 떨어지면서 알고리즘에 따라 막대한 규모의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의 자금이 1달러의 가격을 회복하기 위해 동원됐지만 결국 자금 동원력에서 공격자, 그리고 불안에 휩싸인 시장의 UST 매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UST의 가격은 한달이 지난 현재 코인마켓캡 기준으로 1달러가 아닌 10원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용이 말 그대로 붕괴된 것이죠.
UST 디페깅 이후 한때 USDT도 1달러 가격대를 소폭 이탈했구요. 다른 스테이블 코인으로도 이탈이 확산되는 형국입니다. 최근에는 중국 출신의 저스틴 선이 이끄는 블록체인 프로젝트이자 비트토렌트를 인수한 것으로 유명한 트론이 만든 스테이블 코인인 USDD의 가격이 1달러 아래로 이탈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디페깅을 막기 위해 트론 다오 리저브가 5000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입한다고 이틀 전에 밝혔구요. 빗썸, 업비트, 코빗, 코인원 등 주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트론(TRX)에 대해 일제히 투자 주의를 밝혔습니다.
다음 신뢰 붕괴의 대상은 놀랍게도 이더리움입니다. 정확히 말해 이더리움 2.0에 스테이킹한 이더리움입니다. 이더리움은 조만간 진행될 이더리움 2.0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이더리움 스테이킹을 진행하고 있는데 스테이킹을 하면 업그레이드 이전까지는 이더리움을 다시 회수할 수 없습니다. 마치 만기가 정해진 저축과도 같은 것이죠. 은행에서도 급전이 필요할 경우 저축 담도 대출을 해주잖아요? 이처럼 스테이킹된 이더를 대상으로 증서격인 stETH를 내주는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있는데 바로 리도 파이낸스이구요. 이 stETH를 담보로 다시 이더를 대출해주는 회사가 있는데 바로 셀시우스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더를 스테이킹하고 stETH를 받은 다음 다시 이를 담보로 셀시우스에서 이더를 빌려 스테이킹하고 다시 stETH를 받은 다음 다시... 가 가능하겠죠? 네 가능했습니다.
이의 전제는 stETH와 ETH의 교환 비율이 1대 1로 일정해야 하는 나름의 페깅이 성립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테라 사태 등으로 가상자산 시장의 투자 심리가 악화되면서 이더리움 2.0 출시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stETH의 할인율이 높아지면서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stETH의 가격이 하락하고 이더와의 디페깅이 커질수록 stETH를 담보로 이더를 빌린 사람들의 경우 담보 가치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빚의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강제 회수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죠. 게다가 대출해준 셀시우스마저도 이같은 연쇄 청산 때문에 은행 자체의 도산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사실 stETH는 이더에 기반한 증서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반 담보인 이더가 없으면 신용은 제로가 됩니다. 신용이 제로인 증서에 기반해 이더를 또 대출해줬기 때문에 문제가 커지는 것이죠.
이같은 도산 우려에 자산이 노출된 곳이 또 있으니 바로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유명한 헤지펀드인 쓰리애로우캐피탈, 줄여서 3AC입니다. 여기가 알고보니 셀시우스의 대출 상품을 대규모로 이용했더란 것이죠. 3AC에서는 stETH 디페깅과 관련해 셀시우스와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보유중인 stETH도 손실을 감내하고 이더, 그리고 스테이블 코인으로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더 이상의 자산 손실을 막기 위한 조치죠.
이처럼 stETH와 ETH간 페깅이 무너지면 이더리움에 대한 신뢰도 일부 손실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페깅이라는 것 자체가 블록체인 생태계 내가 아닌, 외부의 가치 판단 기준을 끌어다 쓰는 것이기 때문에 페깅을 구축한 블록체인 프로젝트 내의 탈중앙화만으로는 신뢰를 100% 구축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담보를 페깅으로 치환한 새로운 종류의 파생 토큰을 도구로 레버리지를 만든다는 것은 외부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5월 이전까지는 이같은 구조를 시험하는 리스크가 크지 않았지만 마치 물이 섭씨 99도까지는 가만 있다가 100도에 끓기 시작하듯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급격하게 요동치는 격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100도를 넘긴 물이 지금도 끓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