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시장에 오랫만에 훈풍이 불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1만7천달러를 웃돌았고 솔라나는 일주일만에 20% 이상 올랐습니다. 앱토스, 질리카, 갈라 등도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네요.
비트코인 가격이 1만6천달러 대에서 한달 가까이 머물러 있으면서 위축된 투자심리도 덩달아 개선되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FTX 사태 이후 코인 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고 있는 유동성 축소는 아직까지 큰 변화의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좀 더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넷스케이프는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의 태동기 때 월드와이드웹(WWW)를 대중화하는 데 큰 몫을 한 웹 브라우저입니다. 넷스케이프 이전의 인터넷은 사실상 텍스트와 하이퍼링크가 전부인 문서 덩어리였지만 넷스케이프가 대중화되면서 멀티미디어 인터넷, 즉 웹이 보편화돼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당시에는 경쟁자도 없어서 넷스케이프가 사실상 인터넷 표준을 차지했습니다. 1996년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나오기 이전까지는요.
마이크로소프트의 그 유명한 끼워팔기 사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 무상 번들로 위기에 처한 넷스케이프는 1997년 대규모 업그레이드를 단행합니다. 웹브라우저 뿐만 아니라 이메일, 메신저 등을 한꺼번에 통합한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터를 출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전략은 대실패를 거뒀습니다.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다보니 실행 속도와 안정성이 떨어졌고 웹브라우저만 쓰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수요에도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거든요. 이후 넷스케이프는 결국 기능면에서도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밀려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쓸쓸히 퇴장합니다.
🌐 마이크로소프트의 끼워팔기
넷스케이프 천하였던 웹브라우저 시장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 제공하면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말합니다. 넷스케이프는 1994년 출시 이후 웹 브라우저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잡으면서 시장을 장악했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1995년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출시하고 1997년 윈도 98의 기본 브라우저로 탑재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늘렸습니다. 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은 결국 넷스케이프의 패배로 끝났으며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이후 구글 크롬의 등장 이전까지 웹 브라우저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 98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 제공한 것을 두고 미국 법무부가 1998년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면서 회사가 분할될 위기에 처했지만 2001년 합의를 통해 타개한 바 있습니다.
출처 : 연합인포맥스
지금의 가상자산 거래소, 특히 바이낸스는 과거의 넷스케이프를 연상시킵니다. FTX 파산 이후 거의 유일한 글로벌 거래소로 부상했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굉장히 많은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사실상 불법으로 인식되는 무기한 선물, 마진 거래와 함께 신규 코인의 투자를 모집하는 런치패드, 스테이킹, 옵션 거래, 그리고 NFT 마켓플레이스까지 가상자산에 관한 거의 모든 금융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 중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선물, 마진 거래입니다. 선물, 마진 거래는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 거래소의 재정 상태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FTX를 성공 가도에 올려놓았다가 추락시킨 주된 요인도 선물 거래라고 할 수 있죠. 또 현물 거래와는 매우 다른 기준과 방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유사한 형태로 제공되다 보니 투자자들의 투자 판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서비스 서로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겠죠. 넷스케이프도 여러 기능을 엮어놓다 보니 안정성이 매우 떨어졌는데요. 선물의 부실이 현물로 전이되거나, 현물의 부실이 선물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둘 중 하나라도 부실이 발생하면 거래소들은 FTX처럼 입출금을 걸어 잠급니다. 현물 포함해서요.
이같은 우려에 대한 대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코인 버블의 원인으로 지목받았던 디파이에서입니다. 탈중앙화 금융 형태로 선물만 떼어서 제공하는 프로젝트들이 나와 가상자산 거래소의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기능 위주로 세분화될 경우 바이낸스를 포함한 '무거운' 거래소들이 과연 잘 버텨나갈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다행히 국내 거래소들은 선물 거래를 제공하지 않아 이같은 흐름에서 열외이지만 반면교사로 삼는 것도 좋겠습니다.
가상자산 거래소가 몸집은 비대하면서도 위기에는 취약하다는 사실이 FTX 파산으로 만천하에 드러난 지금 코인 거래 시장에 대한 우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FTX 파산 이후 바이낸스도 한차례 사용자들의 코인 대거 인출로 홍역을 치뤘습니다. 그리고 코인런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데요. 바로 후오비입니다.
후오비는 중국계 가상자산 거래소 중 탑3로 꼽혔던 곳입니다. 바이낸스, OKX, 그리고 후오비였죠. 국내에도 후오비 코리아를 설립하고 코인 거래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최근 블록체인 프로젝트 트론의 설립자인 저스틴 썬에게 사실상 인수됐습니다. 이후 공개한 재정 상태에서 자체 발행 토큰인 HT의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나 FTX와 유사한 부실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출처 : 트론 공식 홈페이지
후오비를 사실상 인수한 저스틴 썬은 연일 후오비의 자산 상태가 건전하며 사업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FTX도 파산 이전에는 비슷했거든요. 거세진 코인런으로 저스틴 썬은 1억달러 규모의 스테이블 코인을 후오비로 이전해 유동성을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바이낸스, 후오비의 코인런은 아직 FTX와 같은 사태까지 이르진 않고 있습니다. 코인런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거래소는 인출해줄 코인이 없기 때문에 입출금을 정지하기 마련이거든요. 양사는 아직까지 입출금 정지까지는 가진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중앙화된 거래소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지금, 조심은 하면 할수록 좋은 거겠죠. 주의가 요망됩니다.
앞서 언급한 거래소의 비대화와 코인런과 맞물려 코인 버블의 주범으로 지목받았던 디파이가 새롭게 조망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자 농사로 대변되는 수익 창출 수단으로서의 디파이가 아닌 중재자로서의 디파이입니다. 사실 탈중앙화 금융이라는 사전적인 정의에 더욱 부합하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최근 주목받는 디파이 트렌드는 바로 선물 거래입니다. 국내에서는 마진과 맞물려 사실상 불법 취급을 받지만 전세계 코인 선물, 마진 거래량은 어마어마합니다. 바이낸스만 해도 24시간 거래량에서 현물의 3배 가까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코인 시장에서 선물은 주식 시장과는 다르게 포지션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무기한 선물이 주를 이룹니다. 그만큼 위험도도 높습니다.
특히 선물은 FTX가 파산 이전까지만 해도 바이낸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주된 이유였습니다. 동시에 워시 트레이딩, 즉 자전거래를 통한 시장 조작 우려도 높은 분야였구요. 이같이 중앙화된 거래소들에게서 일어나는 시장 조작과 혼란 우려를 회피하기 위해 탈중앙 선물 거래소가 디파이에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디파이의 선물 거래소 등장은 그동안 이자 농사에만 초점을 맞췄던 디파이가 중개자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찾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GMX와 같은 탈중앙 선물 거래소들도 자체 토큰을 발행하고 예치시 거래 수수료의 일부를 이자로 제공하는 등 이자 농사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화된 선물 거래의 문제를 해소하면서 탈중앙화된 중개를 제공하는 것은 디파이의 본연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죠.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중앙화, 비대화된 코인 금융을 기능별로 해체해 위험을 덜하는 형태로 나아가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물 자체에 내재된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은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또 디파이 특유의 알고리즘의 허점을 이용한 공격도 발생한 바 있으니 유의해야겠습니다.